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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우라 토트넘에서 마지막을 끝내며 손흥민 품에 안겨 오열하다

     

    모우라는 굉장히 오랜 시간 손흥민에게 안겨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더욱 눈길을 끄는 장면은 포옹이 끝난 손흥민에게 안아달라고 조르는 모우라의 아들이었습니다.  가끔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인간관계는 의심받기도 하고, 누군가의 친절은 자신을 꾸미기 위한 가식으로 오해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린이는 언제나 감정에 솔직합니다.  수만 명이 모인 공간에서 흥민 삼촌에게 안아달라고 조르는 무우라 아들의 모습은, 손흥민과 모우라 가족이 평소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알 수 있는, 그 어떤 장면보다 진실된 순간이었습니다. 

     

    모우라 토트넘

     

    이어서 손흥민은 모우라의 아내와 감사와 격려를 의미하는 포옹을 나눕니다. 흔히 알려진 대로, 모으라는 성인에 가깝게 느껴질 만큼 수많은 미담의 주인공이고, 그가 받은 교육의 뿌리에는 종교가 있습니다.  그가 신을 믿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 아내가 큰 곳을 차지하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마리사는 비엠이자 브라질의 모델, 그리고 sns의 거대한 인플루엔서입니다. 피에스지 시절, 변호사를 통해 소개받은 아리사는 오우라와 같은 상파울로 출신이었고, 굉장히 감정적인 성격의 오우라가 낯선 타지 생활에서 아리사에게 느낀 위연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  하지만 나리사의 부모님은 딸의 남자친구로 축구 선수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으라는 나리사의 어머니 그라시엘라의 허락을 받기 위해 무려 9개월간, 경계가 없는 날이면 그녀를 방문하며 인생 최대의 노력을 쏟아붓게 됩니다. 2016년 12월 23일 금요일 모으라가 새로 태어난 순간입니다.  그건 내가 평생 느껴왔던 모든 감정들과 비교해서 전혀 다른 새로운 감정의 소용돌이었어요.  아마 제 인생에서 다시는 그런 감정을 겪지 못할 거예요.  물론 축구의 결승전에 진출해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일주일 내내 잠도 못 잘 만큼 안절부절 못했어요

     

    . 인생의 유일한 사랑, 나비사와 결혼한 모우라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표정이었습니다.  나리사를 만나기 전, 모으라는 오직 축구에만 미쳐 있던 귀신 같던 선수였습니다.  나는 그 누구와도 비교되고 싶지 않고, 축구계에서 나만의 역사를 만들어내고 싶다 상파울로 아카데미 역사상 최고의 선수였던 카카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받던 압도적인 유망주 모이라는 당시의 라이벌 네이마르 팀 레전드 카카가 아닌 축구계의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외쳤던, 차원이 다른 동기를 가진 선수였습니다.  그의 미친 승부욕은 유럽에 와서 스트레스를 넘어 받아 머리가 다 빠졌다는 농담에도 녹아 있을 만큼, 웃는 얼굴 뒤에 이기고 싶은 욕구가 가득한 선수였습니다.

     

    자기가 가지 못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네이마르를 브라질의 영웅이라 극찬했던 장면 필사적으로 포지션 경쟁자 손흥민의 득점왕을 만들어준 장면 평생의 꿈 월드컵에 결국 출전하지 못했지만, 자기 대신 공격수로 월드컵에 참가해 원더골을 넣은 히샬리송의 옷을 주워와 다준 모라의 인생이 더욱 감동적인 이유입니다. 

     

    그는 결코 승부의 세계에 물은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누구보다 승리를 원하고, 종목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던 야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겐 태양 같은 야망을 압도하는 우죽 같은 선함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모우라에게 편안함을 안긴 최고의 주인공은 역시 라리사와 그의 아이들이었습니다. 

     

    유소년 모흐라의 인생은 곧 승리의 역사였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가장 친한 친구 대부분을 잃어버렸습니다. 압도적인 능력으로 오직 위로만 향했던 모라의 레벨업에 친구들은 쫓아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여전히 튼튼함에 이은 선수들, 그리고 신입생들 한 명 한 명을 인간 쪽으로 대하는 이유입니다. 

     

    그가 가장 먼저 사귄 친구들은 네이마르, 손흥민 같은 슈퍼스타들이 아니라, 지금은 프로 축구에 남아 있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브라질 전국의 기대를 받은 모우라와 네이마르가 대표팀에서 처음 조우하고 급속도로 가까워진 이유는 두 명 모두 엄청난 카톨릭 신자입니다.  그들은 승리와 패배에서 모두 가장 먼저 하느님을 말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우라는 세 살에 세례를 받았으며, 평생 카톨릭 교육과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의 어머니는 이슬람에 뿌리를 주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을 만들어내기도 했던 두 종교가 합쳐진 무우라가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다른 문화, 다른 인종, 다른 언어를 쓰는 모두에게 관대하고 선한 이유입니다.  그의 뿌리는 타인을 미워하고 발음을 질타할 기회조차 없을 만큼 공평한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무흐라 인생 최대의 위기는 피에스지도 아니고, 토트넘 시절도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은 모우라에게 공부와 축구의 병행을 부탁했고, 그는 매일 학교와 클럽을 오가기 위해 버스 두 대와 지하철 한 번을 갈아타는 강행군을 펼칩니다. 

     

    8에서 12세 정도에 이미 꿈을 위한 행진을 시작한 모으라의 육체는 너무도 연약했고, 14세 즈음에야 그가 또래보다 훨씬 작고 프로 선수가 되기에 부적합하다는 진단을 받게 됩니다.  당시 그가 소속된 코린치안스 아카데미는 오우라를 위한 적절한 치료법을 끝내 발견하지 못했고, 부모님은 그를 더욱 큰 클럽 상파울루로 이동시킵니다. 그리고 14세부터 18살까지 모으라는 기적적인 육체의 성장을 이뤄냈고, 프로축구 선수가 될 수 있는 체형에 도달하게 됩니다. 

     

    가장 좋아하는 축구를 잃을 뻔한 우울한 인생 최대의 위기였으며, 역시 그가 신의 존재를 확신하는 또 다른 순간이기도 합니다.  172cm까지 자라난 모우라는 동양양대를 폭격하기 시작했고, 위에 언급한 축구계의 나만의 역사를 만들겠다는 포부의 유망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 때문에 기회를 얻지 못한 친구들의 꿈까지 껴안은 대표였습니다. 

     

    무우라의 축구 인생은 결국은 그가 꿈꿨던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가장 주요했던 지난 2년 토트넘 스코드에서 무우라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손흥민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자기 때문에 기회를 잃었던 수많은 친구들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던 모호라가 아이러니하게도 절친한 손흥민에 의해 많은 기회를 얻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두 명의 포옹은 승자와 패자의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경쟁을 끝낸 동료에 대한 격려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모든 것을 공감하는 비슷한 성향을 가진 두 영웅의 인사였습니다.  너무 수고했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손흥민이 말합니다. 몇 년간 함께했던 정말 성실한 친구, 참 밝은 친구, 그리고 저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는 친구였어요.  가장 큰 부분은 항상 긍정적이었다는 거예요.  너무나 감사해요. 그저 같이 훈련하고 놀고 경쟁하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축구에는 언제나 이별이 존재하고 있어요.  선수든 감독이든 누구든지 그런 축구를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할 것 같아요. 루카스의 앞날을 늘 응원할 거고, 여전히 그를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어요.  손흥민은 동료와 경쟁자를 잃은 게 아니라 이렇게 또 한 명의 친구를 떠나보냈습니다.  어쩌면 손흥민의 대리에 평생 교체되어 들어오던 모우라가 전했다던 소니아 내가 득점왕 만들어줄 게가 맴돌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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